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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빈이 타고난 성품

스스로 구한 용기와 희망으로 끝내 피어난 전여빈의 시간.

 

BY ELLE 2021.01.09

 

 

상반기에 공개될 드라마 〈빈센조〉 촬영이 한창이죠. 방영을 앞둔 시점엔 대체로 어떤 마음인지 촬영 중에는 방영에 대한 생각을 거의 못해요. 지금은, 격하게 말하자면 아주 혈안이 된 상태예요. 홍차영이라는 캐릭터와 작품을 더 잘 알고 싶어서. 
 
홍차영을 연기할 때 꼭 필요한 제스처나 눈빛, 말투가 있다면 독특한 리듬이 있어요. 그게 음계로 느껴질 때도 있고요. 촬영장에 출근하면 초반엔 살짝 쑥스럽다가 조금 지나면 텐션이 확 바뀌어 있어요. 홍차영은 ‘똘끼’와 독기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평소의 나와 달라서 이 사람의 리듬이 몸에 배는 게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긍정적인 영향인 걸요 맞아요. 요즘 촬영장에서 캐릭터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쓸쓸하지 않아요. 촬영장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시원시원하시고 멋있어요. 배우들은 촬영 후 집에 돌아온 뒤에 자기 불확신을 갖게 될 때가 있거든요. ‘잘했던 걸까?’ 하는 거죠. 그런데 〈빈센조〉 촬영장은 다녀오면 많은 부분에 느낌표가 생겨요. 용기와 확신을 얻을 수 있는 현장이에요. 
 
상대역인 송중기와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났죠 홍차영이라는 캐릭터는 상대방을 계속 툭툭 건드리거든요. 초면인 선배님에게 그렇게 하려니 무안했어요. 그럴 때마다 “더 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덕분에 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밥을 엄청 사줘요. ‘밥 잘 사주는 좋은 중기 오빠’입니다(웃음). 
 
〈빈센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배우는 오늘도〉와 〈멜로가 체질〉도 떠오르네요. 코믹한 코드를 지닌 배역을 연기할 때 느끼는 즐거움은 평소에 쓰지 않는 호흡을 사용하는 게 재미있어요. 또 어릴 때부터 개그 욕심이 있었어요. 제가 재미없는 사람이라 유머러스한 친구들을 좋아하고 부러워했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웃길 수 있어?’ 하고 대놓고 물어본 적도 있다니까요. 
 
오랜 개그 욕심을 지금껏 어디에 풀어왔나요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요. 가족과 10년 지기 친구들 정도(웃음). 그런데 〈여배우는 오늘도〉가 나에겐 아주 중요한 기억 중 하나예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문소리 선배님을 뵈었고, 함께 작업까지 했으니까. 현장에서는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우스꽝스럽게 보여도 상관없었고요. 그냥 그 인물이기만 하면 됐어요. 그랬더니 자유로워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캐릭터를 만나는 두려움이 없어진 것 같아요. 
 
감독 문소리가 어떻게 현장을 꾸려가는지 궁금하네요 약한 사람에게 약한 분이었어요. 그 현장에선 내가 약한 사람이었죠.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모든 걸 해볼 수 있게 힘을 줬죠. 선배님이 배우로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감독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계속 공부하고 나아가는 모습은 저에게 귀감이 돼요. 
 
〈멜로가 체질〉에서 연기한 이은정도 ‘강강약약’,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죠. 평소 그런 ‘사이다’ 같은 면이 본인에게도 있나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려고 하지만 크면서 방식을 많이 바꿨어요. 청소년기에는 솔직한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솔직히 말했거든요. 점차 그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여대를 다녔는데, 너무 착한 친구들과 친해졌어요. 인내심이 많은 애들이라 세월을 함께하면서 반성한 것이 많았죠. 
 
대학 시절에는 연기 전공을 하면서 다른 과 전공 수업을 청강했다고요 청강은 부담이 없잖아요. 교수님에게 허락을 구하고 출석 체크만 잘하면 되죠. 열려 있는 배움의 기회를 붙잡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았어요. 청강하느라 바빠서 동기들과 점심을 못 먹을 때도 많았어요. 시간표가 다르니까. 얕고 넓게, 새로 아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무용과, 실용음악과, 회화과 수업 등 청강한 수업을 보니 예술적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네요 오글거리지만 그때는 훌륭한 종합예술인 배우가 되고 싶었거든요. 다양한 예술에 대한 이해 능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주중에 알바를 하나 더 할지, 수업 하나 더 들을지 그런 걸 늘 고민했던 것 같아요. 
 
스물한 살에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한 후, 서른까지만 해보고 잘되지 않으면 배우를 그만두겠다고 기한을 정했다죠. 왜 서른이었나요 실은 다른 게 아니었어요.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 경영할 능력을 갖춰야 했거든요. 어머니가 혼자서, 저희 3남매를 키우셨어요. 그래서 서른을 데드라인으로 삼았던 거예요. 30세가 되도록 이 일로 밥벌이를 못하면 그만두겠다고. 
 
그만둔 다음엔 뭘 할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아뇨. 그래서 더 괴로웠어요. 하지만 그 시절의 엄청난 불안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아예 막다른 골목에 갇히니 눈앞의 벽을 무조건 관통하는 수밖에 없었죠. 물론 정말 다 내려놓고 나면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했을 거예요. 
 
그래도 당시 행운처럼 느껴진 작은 기회들이 있었을까요 물론이죠. 그런 걸 하나씩 잡았기에 버틸 수 있었어요. 단편영화를 찍거나, 연극 무대의 스태프로 일하고, 스태프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던 것. 그런 게 내 숨통을 트여주었어요. 사랑하는 가족과 몇 명 되지 않는 오래된 친구들도요. 가난하고 못난 모습을 마음껏 보여도 괜찮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게 엄청 힘이 됐죠. 
 
그 후 단순히 관객 수와 시청률로만 따질 수 없는, 의미와 힘을 지닌 작품에 이름을 올렸어요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죄 많은 소녀〉를 만나기 전과 후의 저는 완전히 다른 속성을 품게 된 것 같아요. 그만큼 저에게 큰 작품이었어요. 김의석 감독님이 치열하고 진실된 사람이라 더욱 그랬겠죠. 창작자가 작품을 다루는 태도와 인물을 만나는 시선을 배웠어요. 엄청난 행운이죠. 
 
한편 노희경 작가를 좋아해서 〈라이브〉에 출연했을 땐 ‘성덕’이 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죠 〈멜로가 체질〉에서 천우희 언니와 만난 것도 그런 순간 중 하나였어요. 정말 좋아했거든요. 〈한공주〉와 〈써니〉를 보고 푹 빠졌어요. 관심이 생기고 나서는 출연작을 다 봤어요. 생방송으로 시청한 시상식에서 우희 언니가 상 받을 땐 같이 울었어요. ‘저 배우 내가 진짜 열심히 응원할 거야!’ 하면서. 
 
배우로서 자신의 강점이라면요 지금 못나고 부족해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게 나의 씩씩함이고 최대 무기예요. 늘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보듬어줘야 희망이 생기잖아요. 
 
엄청 값진 무기인데. 천성일까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너무 열심히 사셔서 알게 모르게 배운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은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은 아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계속 노력하며 살아요. 물론 아주 어릴 땐 다른 사람들이 가진 화려한 것만 가치 있어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곧잘 “기본도 못하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니. 기본부터 잘해라” 하셨거든요. 다들 꿈을 크게 가지라는데 엄마는 기본이나 잘하라니 어릴 땐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확 깨달은 거예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리에서 똑바로 해야겠구나. 작은 일에도 스스로 용기를 얻는 법을 알게 됐죠. 
 
에너지가 필요할 때 본인에게 내리는 처방은 산책. 단순한 성격이라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스르르 마음이 풀리고 힘이 날 때도 있어요. 
 
일상에서 연기 외에 몰두하는 순간이 있다면 이건 정말 의외의 답변일 텐데! 설거지요. 설거지할 때 마음의 평온을 얻어요. 
 
요즘 배우들은 본인의 취미나 관심사로 콘텐츠를 만들어 소통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마 내 콘텐츠는 너무 재미없어서 다들 보지 않을 거예요. 산책하기, 영화 보기, 책 읽기. 그런 게 전부거든요. 
 
‘전여빈과 산책하기’ 채널,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전여빈과 ‘말없이’ 산책하기가 될 거예요. 역시 안 되겠죠. 그런 채널은(웃음)….   

 

 

기사 및 화보 출처

전여빈이 타고난 성품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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